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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성당 2026년 주제성구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마르코 16, 4)

우리본당

우리본당

개황

본당명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파동성당 주보성인 성 바오로
설립년월일 1963년 08월 13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47가길 52
전화번호 (사무실) 02-704-0045  |  (묘지) 02-704-0059 팩스번호 02-704-0049
관할구역 청파동, 효창동, 원효로1가, 용문동·공덕동·신공덕동 일부 신자수 2,351명(2023년 12월 현재)

주보성인

성 바오로 성인상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유대인으로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고,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렸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리스도의 현시를 체험하면서(34~36년 사이)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선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고, 각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하였는데 위험을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 시절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습니다. 43년경에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선교의 시초가 되었으며,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카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습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그의 입지를 세계로 번영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며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를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며,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이 기간 중 로마 교인들에게 제공되는 등 유대인들로부터 곤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에페소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거쳐 방문했고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는 전승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서, 코린토스 1서와 2서, 갈라디아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서와 2서 및 기타 서간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 축일은 6월 29일이며, 우리 본당 축일이기도 합니다.